뭔 이미지를 넣어야 잘 넣었다고 소문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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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 비교



1. 1인당 GDP 

우리나라는 1972년 324.2달러였고, 그 다음해에 365달러를 넘는 406달러를 기록합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평균적으로 국민 한사람이 하루에 1달러를 넘게 벌기 시작한게 1972년에서 1973년 넘어갈 즈음이라는 이야기죠. 

2022년 기준으로 필리핀 1인당 gdp가 3,623달러 정도 합니다. 한마디로 절대 빈곤국가의 시절이었죠. 1977년에 1,000달러를 돌파하고, 1994년에 1만달러를 넘어섭니다. 2006년에 2만달러, 2017년에 3만달러를 넘어서죠. 이글을 쓰는 시점에서 1972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은 생일이 넘었으면 51세, 그렇지 않으면 50세입니다. 

반세기만에 거의 100배에 달하는 성장이 있었습니다. 
(빈부격차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글의 대상이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2. 해외여행 자유화 

젊은 분들은 조금 놀랄수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일반인들이 해외여행이 가능하게 된게 1989년입니다. 

그러니까, 33년 전에는 일반인은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해외여행이 불가능했죠. 허락을 받으면 될거 아닌가 싶지만, 일반적인 이유로는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시절에 유학을 갔다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인거죠. 그래서 신혼여행은 모두 제주도와 설악산, 경주였습니다. 지금은 그런 이미지가 없는데, 그때에는 제주도가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습니다. 

그러고보니, 국내에서도 요즘은 그런게 없는데, 예전엔 여관같은 숙박시설을 가면 숙박부를 작성했습니다. 국민의 이동에 대해 낱낱이 기록을 남기는 시절이었죠. 



3. 주5일 근무제와 시간외 근무수당 (야근 수당) 

국내에서는 2002년 처음 도입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은행에 확대 시행되었고 다시 대기업으로 확대되었죠. 

일반적인 사람들은 약 2005년에서 2006년부터 혜택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업종에서 주5일 근무제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전에는 토요일 근무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특이했던 문화(?)로는 제 주변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토요일 점심은 중식당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 연장, 야간 및 휴일근로에 대한 수당을 법제화 해서 정하고 있는데 이 근로기준법 제56조는 2014년에 이루어 신설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전혀 없는건 아니었는데 상당수 기업들들에선 특별한 보상 없이 야근과 주말근무가 이루어 졌구요. 

그 이전엔 전태일 분신사건(1970년)이 있기 전까지는 근로기준법 자체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 분신사건을 계기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 졌지만 그 이후로도 상당기간이 지나서야 근로기준법은 조금씩 더 지켜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4. 야간통행금지 

시간의 변경이 있었지만, 대부분 자정, 즉 24시부터 다음날 4시 정도까지가 대상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넘어서 집 밖에 나다니면 유치장에 갇히곤 했죠. 일명 통금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이 해제된 시기는 1981년입니다. 뜻밖에도, 겨우 40년 전까지만 해도 야간에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통행금지가 실시되었던 국가입니다. 



5. 대학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제공하는 데이터가 1980년 부터만 정리되어 있어 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1980년의 대학교 수는 85개교이며, 2022년에는 191개교로 확대됩니다.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1970년 고등학교 졸업자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26.9% 인데, 여기서 말하는 고등교육기관이란 전문대학, 교육대학, 대학교, 각종학교를 포함합니다. 

이후 1985년에 36.4%, 1995년에 51.4%, 2003년에 79.7% 로 증가하는데, 이 통계는 2003년까지로 작성되어 있어 이후는 별도의 자료가 필요합니다만, 대학교 정원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 크게 변동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요즘 인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데, 과거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남자주인공을 대학생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당시의 대학생은 약간 지식인 정도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므로 현재의 대학생의 위치로 생각하면 당연히 스토리가 이해가 안갈수 밖에 없죠. 지금으로서는 그냥 백수, 무직이네 싶기도 합니다. 

위에서 말한 1985년 진학률이 전문대학을 포함해서도 36%에 이르는데, 이때가 신군부가 대학졸업정원제를 실시하면서 입학정원이 늘어난 것을 감안해도 순수 4년제로 제한하면 당연히 훨씬 적었던 바, 사회에서 바라보는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그 시절에 하던 시국 데모는 지금과 비교해서 일반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많이 달랐다고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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