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이미지를 넣어야 잘 넣었다고 소문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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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어떻게 아이를 4, 5명씩 키울 수 있었을까?

1. 글의 배경은 지금 50대 이상의 어린시절입니다.

2. 예전이 나았다 라는 의미의 글이 아니라 그전엔 그냥 그런식이었다라는 사견입니다.



1. 공동체문화


예전엔 공동체문화가 강했습니다. 마을,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잘 알았고 왕래도 잦았죠. 나쁘게 말하면 간섭이 심했고 좋게 말하면 관심과 도움이 많았습니다.


이때에는 아이들은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서로 어울려 놀았습니다. 눈 뜨면 동네에 나와 서로 어울리며 여러가지 놀이를 했고 또래가 아닌 아이들도 서로 섞여서 잘 놀았죠. 그러다 저녁이 되서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기 시작해서야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어린 나이인데 그중에서도 조금 나이 든 애가 어린 애를 돌보기도 했고, 편을 나누는 놀이에서도 깍두기로 끼워주기도 하면서 다들 잘 놀았습니다. 동네 어르신들도 지나가면서 아이들을 보살펴 주기도 했고 엇나가는 아이들에겐 이놈 그러면 못써 라고 훈시를 하기도 했죠. 물론, 이런것에도 장단점은 있습니다만, 가정의 입장에선 보육을 나눠서 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아이들은 눈뜨면 집밖에 나가서 놀다가 저녁먹을때야 들어왔습니다. 



2. 전업주부와 학원, 가정교육


예전엔 맞벌이 가정이 거의 없었습니다. 돈벌이는 아빠의 역할이고, 보육은 엄마의 역할이다 라는 인식이 강했죠. 좋건 싫건, 아이들은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때에는 학원이라는 개념도 약했습니다. 지금처럼 영어같은 정규과목 학원은 거의 없었고 주산학원이 꽤 많았죠. 과외가 있긴 했는데 지금처럼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가정의 식탁문화도 지금보다 심해서 식탁에선 부모님이 수저를 들기 전에는 아이들은 수저를 들지 않는다고 가르쳤죠. 예절의 엄격함은 사회의 자유로움을 방해하는데, 그 방해는 나쁘기도 하지만, 어떤면에선 상호간의 룰로 작용해 좋은 효과를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3. 빈부격차


그때도 당연히 빈부격차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티를 낼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았죠. 특히 아이들은 더욱 그렇구요. 해외여행은 88올림픽 직전에 자유화 되었기에 해외를 다녀온 아이들은 없었으며, 부자라고 해도 옷이 조금 좋고 운동화가 조금 좋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국민 대부분이 가난하기도 해서 고액의 유모차 같은 것들이 있지도 않았구요. SNS 가 있는것도 아니라서 남들이 뭐하고 사는지 알 방법도 없었습니다. 다들 나처럼 살겠거니 하고 살던 시절이었죠.


머리를 챙빗으로 빗으면 이가 나와서 머리에 에프킬러를 뿌리던 시절이기도 하고 국민학교에서 학생에게 구충제를 나눠주던 시절이니까요.



4. 맏이의 역할

시골에선 맞벌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농사일은 부부가 나가기 때문에 장남/장녀가 밑의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습니다. 여기서 맏이 철이 일찍 든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죠. 일정부분 부모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맏이에게는 그런 역할을 당연히 맏기기도 했구요. 아이가 아이를 보살피던 시절이었죠.


5. 사회적 분위기

가장 근본적으로, 예전엔 다들 부족한 것이 많은 시기라서 아이들에게 지금처럼 정성을 쏟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알아서 잘 큰다, 자기 먹을 건 가지고 태어난다는 식의 세상이었죠. 대학을 가는 비율도 지금에 비하면 엄청 적어서 사회 진출이 빠르기도 했고, 시골에선 일찍부터 농사일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이유에 의한 방임의 시대 였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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